8 은 肉身의 언덕

自談所 | 2009/09/16 06:51 | 重樂

서울신문에 난 기사를 '관악산 가족 종주 코스' 에 오르면서 사색과 함께 다소 거친숨도 몰아 쉴수 있고 잔잔한 파동이 내 가슴을 흔들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8월 넷째 다섯째 주말에 두어번 다녀왔다.물론 첫번째 등산은 기사만큼 도저히 등산 코스를 몰라 생각지도 않게 다소 거친 등산로에 올라 갔고어찌나 고소공포증이 있고 거기에 신발까지 믿음이 안가기에 미끄덩하는 순간 떨어져 뒈지겠지만 떠오르니 말이다.10여년전만해도 산행에서 먼곳을 바라보면서 산행의 맛을 조금은 알았는데 이제 그마저도 없다.아마 스물일곱살 때던가 삼각산 도봉산 자락 암벽 흔히 프리클라이밍라고 하나? (몇몇 사람들이 그 높은 암벽에 오르는것을 보고 부러웠는데)그보다 수월하게 보이는 등산코스에 암벽이 있어 몇몇 일행들이 거기에 조그마한 여인네도 거뜬히 해내는것을 보고 까짓 나도 좀 하겠는데 하다가 어설픈 행위로 발발기다 싶이 몸을 밀착해서 내려오다 오른쪽 다리가 찢어지면서 뚝 떨어졌는데 흐윽 일미터도 체 안되는 곳에는 4~5미터의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여튼 죽니 사니하면서 어떻게 내려 왔으니 그 이후로 산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등산에취미가 생기셔서 삼형제를 억지로 끌려다니싶이 십대시절 고향이 충북권을 시작으로 국립공원은 거의 다 오르다 싶이 했지만 역시 암벽은 아무나 타는게 아니다.

 

 

스무살이 갓 넘었을때 몸무게는 58kg이었다.국방의 의무라지만 죽어도 가기 싫은 군대에 입대한후 6주의 훈련 그리고 애석하게 작전전투경찰(의무전투경찰은 지가 가는것이외다)로 차출되고 2주의 교육후 자대 배치후 정말 힘겨웠다.닭장차에 방패를 앞에 떡하니 놓고 차량경비를 하면서 이게 뭔짓꺼리여 내가 왜 여기 있지.왜 그렇게 자신이 한심스럽던지,쪽도 팔리고 무엇보다 늘 늦잠을 생활화 했다가 이른시간에 기상한후 도로변에서 구보를 하며 군가를 부르는 생활 육체적 고단함 정신적 스트레스 어느새 몸무게는 더 줄어들고 52kg까지 떨어 졌을때 엄니께서 면회 다녀가신후 그렇게 집에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이후 주말이면 언제나 좋아하는 카레나 음식물을 준비해오신후 숙박업소에서 일단 먹이고 잠을 재우던 생각이 난다.(아 이런 고마움을 모르고 또 살고 있네)그럭저럭 버틴후 말년때 할일이 있나 술먹기를 일상화 하고 기타나 두들기면서 살다보니 어느새 뿔려진 내살을 보니 68kg 아마 내 생애 가장 몸무게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처음 닥친 몸무게에 어찌나 숨이 매번 가쁜던지 운동 자체를 싫어 하기에 아침 부터 사발로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고군 분투 그게 뭐 빠지나 지긋지긋한 군생활을 마치고 학교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무줄 탄력마냥 이리저리 빠지고 찌다 보니 첫직장의 과장님이 내게 "자넨 감수성이 너무 많군.사회생활 하는데 에로사항이 꽤 많겠어."지금도 감수성 이라는것이 뭔지 딱히 감을 잡지 못하겠지만,이십대 삼십대 초반만해도 찌는것에 대해 그리 두려움이 없었다.까짓 또 승질 머리 못때게 되면 빠질테고 근데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후 부터 도저히 그건 불가능한 현실이 되고 더이상 성질적으로 살을 빼기에는 물러 터진 심성 거기에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고 바지 착용을 하다 자크며 단추가 남아 도는것 없이 다 작살났다.도저히 몸이 버거워 몸무게를 재보니 역시나 78kg이니 내 신체에 마지막 경고는 늘 8이라는 숫자 인듯 싶기도 하고 올초에 걷기 운동을 시도 하다 워낙 컨디션이 좋아지니 그동안 절제 했던 술이 어찌나 달던지 우울증세도 없고 깨끗이 깨고 느슨해지다 다시금 3~4키로 뺀것 도로 기름화로 저장되고 올 여름 걷기 운동을 통해 8~9kg 빼고 그동안 단추 없이 입던 바지 바느질로 단추를 달고 입었을때의 기쁨 그러나 여전히 술을 쳐먹고 남들처럼 식이요법 그딴것 배부른 부르조아 같아 감히 엄두도 안난다.딱히 헬스클럽에 가서 빼는것이 좋을것도 같지만 난 닫힌 공간에서 운동 따악 질색이다.그리고 파릇파릇 젊은날 세상에 짐은 다 짊어진듯 술이나 퍼마시면서 했던 짓꺼리에 대한 자아비판으로 야산에 올라 하염없이 이미지화되는 생각을 지우기도 펼치기도 하면서 못했던 사색을 만끽하면서 꼭 66kg으로 떨어트리리다.9월이 가기전에...

태그 : 일상

저자는 1977년 형 슈타하임 형무소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RAF 지도자들의 죽음을 시발로 그들의 성장과정 학생운동경력,무장투쟁에로의 경로 체포 격리수용 법정투쟁 그리고 죽음을 사실적이고도 충격적인 필지로 묘사하고 있다.

옮긴이 엄창현은 56년 부산태생으로 도이칠란트 보쿰대학과 브레멘대학에서 사회과학 석사 과정을 수료 했으며 현재 동의대 등에서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빳빳한 책 표지 펼지면 저자와 엮은이에 대한 것을 고대로 옮긴것임.책을 펴낸날 1992년 12월 10일이니 이후 시간에 따른 변화가 있겠지)

-저자서문 중에서-

~역사적 안목에서의 심판도 아니다."RAF"의 사건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였다.~

-역자서문 중에서-

~운동의 그 대중성을 상실해 갈때,대중성 고양을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서의 "무장투쟁"이 오히려 운동의 대중성을 완전히 상실케 만들었다는것이 이책에서 다루어진 역사적 시기에 대한 연구자들의 공통된 인식이다.이책의 내용중의 일부는 영화화 되었다.그 영화는 1986년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제목은 "슈탐하임"이었고,이책의 제4장에 해당하는 재판과정만을 영화화 한것이었다.

 

뭔가 하나 꼿이면 끝장을 보는 성격인데,그게 다소 금방 지쳐서 탈이지만 헌책방도 돌아 다녔지만 구하기 힘들기에 공공도서관에 연락을 하니 리모델링한다고 하거나 이미 대여된 상태였고,도서관 직원의 해결방법을 제시한것이 국내 최장도서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중앙도서관에 가보라는 것이다.아 남산에 있는 그 허연건물 말이죠.어이없어 하면서 서초구에 있다는 애기를 듣고 냉큼 가봤더니.큰 덩치건물에 들어서니 그 위압감에 어리버리 한 상태에서 한 안내창구로 가니 똥궁딩이 아픈듯 매우 짜증스러움으로 무장한 여직원에게 여차 저차 물어보니 태도만큼 신경질적으로 응대하는게 보였지만,어디 이런 악조건에 내가 굴할것인가 사전에 알아본 공공도서관 직원이 그곳은 대여는 안되는 곳이라고 해서 절차가 상당히 간편할줄 알았는데 가입하라고 하네(왜 책 뽀리깔까봐 그런가?) 와 닝기리 개조또 씨박 8월중순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등줄기에는 비오듯 땀오고 가입을 마치고 입구에 들어가 신화의 시간을 읽을수 있냐는 질문에 보통 두질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도 사전에 들었지만,젠장 여직원이 확인해보니 한질 뿐이라 (손떼 묻으면 책이 파손될테니)줄수가 없다고 한다.이런 개씨발 조또마신 허두 허망해서 쓴웃음만 지으니 여직원이 몇몇 공공도서관을 알려주면서 이쪽에 가보심이 권하길래 다시금 입구에 와 참 학생티가 아직은 묻어 나는 아르바이트인지 모르지만 다시 10여분도 체 안되어서출입증을 반납하면서 약간의 하소연을 하니 무척 안타까운듯 말을 건네고 웃어준다.와 승질 끝까지 치밀던 것이 싸악 녹아 내려간다.처음 여직원에게 느꼈던 감정까지 스스르 사라지고...알려준데로 전화질을 하고 가까운 지인에게 부탁을 해서 드디어 이 책을 손에 넣고 읽게 되었을때 와 정말 뜻깊었지.마인호프 여인을 숨결을 느낄수 있으니 말이다.두번 정도 정독을 하려고 계획했지만 한번뿐이 읽지를 못했고,가까운 시일내에 동작도서관이 다시금 열게 되면 대여 해볼생각이다.



공권력은 반드시 이긴다.그러나 勝利한것은 아니다.

울리케 마인호프(Ulrike Meinhof)에게 敬意(Respekt)를 表 합니다.
Deutschland im Herbst 를 또한 감상해보고싶다.

Die RAF - Baader Meinhof Bande from tschinda mahul on Vimeo.

vimeo사이트에 어떻게 내가 흘러 들어갔는지 정확히 기억을 못하겠다.아마 도이칠란트 적군파를 구글에게서 검색하다 안것이 아닐까 추측도 해보는데 웃기게도 아예 영화 한편을 고대로 볼수 있는 화면도 있었는데,개인적으로 몇번 100메가 내외로 올려보니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물론 위영상과 영화 한편을 통째로 올린사람은 돈주고 가입된 사람일테고,듣기는 들어도 알수없는 말이기에 달려시간 한시간반가량을 제대로 본적이 없지만,당시에 언론보도 방향에따라 여론 형성이 어떻게 형성될수 있나 짐작도 해봤다.예를 들면 국내굴지의 재벌총수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경호원들이 온몸에 빵구난체로 피로 얼룩져 대로변에 나뒹굴어진체 죽어있는 것을 생생하게 9시뉘우스를 시청한다면 이건 사상적정체성이고 나발이고 많은 대중들이 와 신난다 박수 쳐주지는 않을테니까,이런 몹쓸 놈의 종자들이라고 하지.하지만 급진적인 사회변혁을 꾀하는것을 죄악시 치부하는것도 안될말이다.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임수경,권인숙,광주항쟁을 한번쯤 생각해봤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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