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에 난 기사를 '관악산 가족 종주 코스' 에 오르면서 사색과 함께 다소 거친숨도 몰아 쉴수 있고 잔잔한 파동이 내 가슴을 흔들리겠구나 하는 생각에 8월 넷째 다섯째 주말에 두어번 다녀왔다.물론 첫번째 등산은 기사만큼 도저히 등산 코스를 몰라 생각지도 않게 다소 거친 등산로에 올라 갔고어찌나 고소공포증이 있고 거기에 신발까지 믿음이 안가기에 미끄덩하는 순간 떨어져 뒈지겠지만 떠오르니 말이다.10여년전만해도 산행에서 먼곳을 바라보면서 산행의 맛을 조금은 알았는데 이제 그마저도 없다.아마 스물일곱살 때던가 삼각산 도봉산 자락 암벽 흔히 프리클라이밍라고 하나? (몇몇 사람들이 그 높은 암벽에 오르는것을 보고 부러웠는데)그보다 수월하게 보이는 등산코스에 암벽이 있어 몇몇 일행들이 거기에 조그마한 여인네도 거뜬히 해내는것을 보고 까짓 나도 좀 하겠는데 하다가 어설픈 행위로 발발기다 싶이 몸을 밀착해서 내려오다 오른쪽 다리가 찢어지면서 뚝 떨어졌는데 흐윽 일미터도 체 안되는 곳에는 4~5미터의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여튼 죽니 사니하면서 어떻게 내려 왔으니 그 이후로 산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졌다.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등산에취미가 생기셔서 삼형제를 억지로 끌려다니싶이 십대시절 고향이 충북권을 시작으로 국립공원은 거의 다 오르다 싶이 했지만 역시 암벽은 아무나 타는게 아니다.
스무살이 갓 넘었을때 몸무게는 58kg이었다.국방의 의무라지만 죽어도 가기 싫은 군대에 입대한후 6주의 훈련 그리고 애석하게 작전전투경찰(의무전투경찰은 지가 가는것이외다)로 차출되고 2주의 교육후 자대 배치후 정말 힘겨웠다.닭장차에 방패를 앞에 떡하니 놓고 차량경비를 하면서 이게 뭔짓꺼리여 내가 왜 여기 있지.왜 그렇게 자신이 한심스럽던지,쪽도 팔리고 무엇보다 늘 늦잠을 생활화 했다가 이른시간에 기상한후 도로변에서 구보를 하며 군가를 부르는 생활 육체적 고단함 정신적 스트레스 어느새 몸무게는 더 줄어들고 52kg까지 떨어 졌을때 엄니께서 면회 다녀가신후 그렇게 집에서 많이 우셨다고 한다.이후 주말이면 언제나 좋아하는 카레나 음식물을 준비해오신후 숙박업소에서 일단 먹이고 잠을 재우던 생각이 난다.(아 이런 고마움을 모르고 또 살고 있네)그럭저럭 버틴후 말년때 할일이 있나 술먹기를 일상화 하고 기타나 두들기면서 살다보니 어느새 뿔려진 내살을 보니 68kg 아마 내 생애 가장 몸무게로 인해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싶다.처음 닥친 몸무게에 어찌나 숨이 매번 가쁜던지 운동 자체를 싫어 하기에 아침 부터 사발로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고군 분투 그게 뭐 빠지나 지긋지긋한 군생활을 마치고 학교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고무줄 탄력마냥 이리저리 빠지고 찌다 보니 첫직장의 과장님이 내게 "자넨 감수성이 너무 많군.사회생활 하는데 에로사항이 꽤 많겠어."지금도 감수성 이라는것이 뭔지 딱히 감을 잡지 못하겠지만,이십대 삼십대 초반만해도 찌는것에 대해 그리 두려움이 없었다.까짓 또 승질 머리 못때게 되면 빠질테고 근데 삼십대 중반에 들어선후 부터 도저히 그건 불가능한 현실이 되고 더이상 성질적으로 살을 빼기에는 물러 터진 심성 거기에 끝까지 고집을 꺽지 않고 바지 착용을 하다 자크며 단추가 남아 도는것 없이 다 작살났다.도저히 몸이 버거워 몸무게를 재보니 역시나 78kg이니 내 신체에 마지막 경고는 늘 8이라는 숫자 인듯 싶기도 하고 올초에 걷기 운동을 시도 하다 워낙 컨디션이 좋아지니 그동안 절제 했던 술이 어찌나 달던지 우울증세도 없고 깨끗이 깨고 느슨해지다 다시금 3~4키로 뺀것 도로 기름화로 저장되고 올 여름 걷기 운동을 통해 8~9kg 빼고 그동안 단추 없이 입던 바지 바느질로 단추를 달고 입었을때의 기쁨 그러나 여전히 술을 쳐먹고 남들처럼 식이요법 그딴것 배부른 부르조아 같아 감히 엄두도 안난다.딱히 헬스클럽에 가서 빼는것이 좋을것도 같지만 난 닫힌 공간에서 운동 따악 질색이다.그리고 파릇파릇 젊은날 세상에 짐은 다 짊어진듯 술이나 퍼마시면서 했던 짓꺼리에 대한 자아비판으로 야산에 올라 하염없이 이미지화되는 생각을 지우기도 펼치기도 하면서 못했던 사색을 만끽하면서 꼭 66kg으로 떨어트리리다.9월이 가기전에...









